1회 1사 3루에서 최정이 만든 타구는 유격수 앞으로 굴러간 평범한 땅볼이었다. 주자는 홈을 밟았고, 그 한 점이 이날 사직에서 나온 결승타로 기록됐다. SSG가 롯데를 17-2로 몰아붙인 경기의 승부처가 첫 이닝 땅볼 하나였다는 건, 이후 여덟 이닝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거꾸로 말해준다.
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건 3회다. 최지훈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롯데 벤치의 선택지는 급격히 줄었고, 한 이닝 뒤 에레디아가 같은 투수를 상대로 다시 아치를 그렸다. 로드리게스는 4이닝을 채우고 8자책을 떠안은 채 내려갔다. 6회 고명준이 이민석에게서 뽑아낸 세 번째 홈런은 승부를 가른 타구라기보다, 이미 기울어진 경기에 찍힌 마침표에 가까웠다.
가장 꾸준히 방망이를 돌린 쪽은 박성한이었다. 다섯 타석에 들어서 네 번 안타로 연결했고, 쓸어담은 4타점은 이날 SSG 타선에서 가장 두꺼운 몫이었다. 대량 득점 경기에서는 홈런 세 방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, 주자를 계속 만들고 계속 불러들인 건 이 자리였다.
화이트는 7이닝을 던지며 자책점을 2점으로 묶었다. 타선이 만든 점수차 탓에 그의 투구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지만, 15점 차 경기를 3시간 7분에 끝낸 이유의 절반은 마운드에 있었다. 추격의 실마리를 만들 만한 이닝을 롯데에 내주지 않았다.
경기 전 무게추는 홈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. 3연패에 빠진 롯데가 안방에서 흐름을 끊는다는 그림이었는데, 정작 끊긴 건 롯데 선발의 이닝이었다. 사직이라는 장소와 반등 시점이라는 조건은 맞아떨어졌지만, 그 조건을 지탱해야 할 선발이 4회를 넘기지 못하면서 나머지 전제가 전부 무너졌다.
시즌 첫 맞대결에서 상대 라인업에 남긴 인상이 이 정도 크기라면, 다음 만남에서 롯데 마운드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오늘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이다.